[창직칼럼] 청개구리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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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가 어찌보면 지금 이 시대에 적합한 창의적인 스타일일지 모른다. 이솝우화 또는 전래동화에 나오는 청개구리는 뭐든 거꾸로 하는 스타일의 대명사이다. 익히 모두가 알고 있지만 청개구리는 지독하게 매사 반대로만 하는 아주 지긋지긋하게 뺀질거리는 스타일이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청개구리 엄마는 죽기 직전에 유언을 하며 자신을 물가에 묻어 달라고 했다. 그러면 평소 청개구리 스타일로 봐서는 당연히 산에 묻어 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웬걸 청개구리는 이번만은 죽은 엄마의 유언을 지키겠노라고 물가에 묻고는 비가 올 때마다 혹시 엄마 묘가 떠내려 갈까봐 울어댄다고 한다. 이런 이솝 우화나 전래동화도 시대에 따라 시즌 2나 3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청개구리처럼 매사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고분고분 순종형은 창의성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어릴적부터 이런 청개구리 스타일이 있다. 머리 회전이 빨라 어른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어도 한번 이상은 왜 그런지 꼬치꼬치 캐묻고는 반대로 하는 스타일이다. 지금은 다르지만 이런 스타일은 초중고등학교 때는 부모나 선생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살았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 새삼 이런 청개구리 스타일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대책없이 무조건 삐딱하면 문제가 있지만 매사 긍정적인 결론을 끌어내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이런 스타일은 권장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스타일을 그냥 용남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무조건 부모나 선생이나 나이 많은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면 왜 그러냐고 묻지도 못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생각으로는 조금 가지고 있던 창의성도 쪼그라들고 사그라들어 버린다.

청개구리는 까칠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1인기업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까칠한 스타일이 많다. 그들이 1인기업을 하는 이유는 조직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기에 좌충우돌이 심히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따져 묻는 스타일이 아니라 제대로 알기 위해 묻고 또 물어 결국에는 깨달음에 이르도록 유도하는 탁월한 사람들이다. 겉으로만 보고 까칠함에 대해 일방적인 판단을 내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 까칠함이 매력으로 발산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평소 청개구리 기질이나 까칠함이 없다면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과연 나는 무조건 순응형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체제든 이론이든 개념이든 무엇이든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스타일이 아닌지.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비교적 창의적이지 못한 편에 가깝다. 물론 극히 드물게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책을 읽어도 강연을 들어도 무슨 일을 해도 일단 한번씩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스타일이 바람직하다. 변화무쌍한 21세기를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뜻 순응형이 좋을 것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중에 충분히 내용을 파악하고 난 후에 동의하고 따라가도 충분하다. 처음부터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우리 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이런 식의 교육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가질 때까지 질문하고 따져보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말 우리에게는 아쉽다. 화를 내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펴고 남의 주장에서 대해 허점을 짚어내는 성숙한 스타일로 육성해야 한다. 자신이나 후손들이 창의적이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바꿔야 한다. 청개구리 스타일과 까칠한 성격이 큰 일을 이룬다.

출처 : 소셜타임스(http://www.esocial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