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직칼럼] 아이에게서 배우는 융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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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보다 아이들에게 융통성이 더 있다고 하면 수긍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실제로 어른보다 아이들에게 융통성이 더 있다. 우리 모두는 어릴때 지금보다 융통성이 더 있었다. 융통성이 있었기 때문에 어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뭔가를 배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아직 약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면 융통성이 적극 발휘된다. 하지만 어른은 추론 능력은 더 있을지 몰라도 융통성은 아이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겨진 편견과 선입견이 융통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도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대체로 아이처럼 순수하다. 진지하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려는 겸손한 태도가 있기 때문에 사고가 유연하고 시시각각 요구되는 융통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몸이 굳어가듯 마찬가지로 생각도 굳는다. 자신의 우월감이 열린 생각과 행동을 방해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닫게 한다. 또한 자연스런 노화 현상으로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으니 자신의 말만 되뇌게 된다. 타인에 대한 태도는 결정적으로 융통성을 확장하거나 축소한다. 경청하지 않으면 유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자신이 그런 현상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일찍이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실을 간파했다. 한번은 그를 흠모하던 카레이폰이라는 젊은이가 더 많은 아테네 사람들이 자신처럼 소크라테스를 숭배하지 않는 것에 좌절해서 텔포이 신탁에 가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신탁은 없다고 했다. 그는 즉시 달려가 기쁜 소식을 소크라테스에게 알렸으나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신탁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이 부적절하거나 모자라지 않는지 언제나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소크라테스의 매력은 극도로 열린 마음을 갖고 겸손하게 늘 질문을 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늘 합리적인 생각을 하면 융통성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자칫 겸손하지 못하면 자신의 합리적인 생각조차 아집과 고집이 될 수 있다. 이는 겉으로 즉시 다른 사람에게는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비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이면서 융통성을 고루 갖추기가 어렵다. 융통성을 가지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의견을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겸손해야 한다. 내 것을 계속 주장하면 결코 융통성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아이에게는 융통성이 없고 어른에게 더 융통성이 있다는 편견부터 없애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우려고 하는 겸손이 사라진다. 내가 최고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겸허하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겨야 한다. 모르면 아이에게서도 배우려는 자세가 있으면 마음이 열리고 융통성이 생긴다.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은 상대방을 세우고 나를 낮추며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최고의 도구이다. 융통성의 레벨을 질문의 수준으로 잴 수 있다. 그만큼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하지 않는 태도는 남을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데서 출발한다. 글을 쓰고 나서 검토하고 또 검토하듯 생각이나 행동도 철저하게 타인의 관점에서 짚어보고 또 짚어볼 때 융통성은 키워진다. 아이에게서 융통성을 배우자.

출처: 오늘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