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직칼럼] 적극적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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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 쓰는 것을 말한다. 배려에는 두 가지가 있다. 소극적 배려와 적극적 배려가 그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소극적 배려가 마치 적극적 배려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아니 현대인 중에서도 서울처럼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소극적 배려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살아간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게 소극적인 배려인 줄 모른다. 예를 들면 내가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테니 제발 나에게 손톱 만큼의 피해도 주지 말라는 식이다. 이런 생각이 기저에 짙게 깔려 있으면 혹시 상대방이 실수를 했을 때 조금의 아량도 베풀지 않고 오직 자신이 받은 피해에 대해 침소봉대하고 상대를 꾸짖고 욕하거나 크게 화를 내게 된다. 따지고 보면 가까운 이웃과의 다툼은 이런 과정에서 생겨나고 급기야 큰 싸움으로 번진다.

소극적 배려를 벗어나 적극적 배려가 몸에 배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적어도 상대가 고의적으로 그러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을 확대 해석해서 불같이 화를 낸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는 것은 인격 수양이 덜 되었음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에 대한 적극적 배려가 우선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상대가 자신의 충성 고객이나 팬덤의 일원이 될 지도 모르는데 순간적인 화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문을 먼저 걸어 잠그는 우를 쉽게 범한다. 이왕 이렇게 된거니까 그냥 성질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건 습관의 문제이지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그런게 아니다.

소극적 배려를 통해 자신과 가족만을 위하는 점차 속 좁은 마음이 되지만 적극적 배려는 융통성과 포용력을 동시에 발휘하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 둘 다 배려이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배려를 하느냐는 자신의 선택이지만 함께 사는 부부는 시간이 흘러갈수록 서로의 배려심도 닮아간다. 자녀도 부모의 이런 배려심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배운다. 그래서 소극적 배려가 옳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말하고 행동한다. 나중에 성인이 되면 누군가 이것을 지적하기도 곤란하고 고치기는 더욱 어렵다. 자신의 욕망을 우선시하는 인간의 본성은 적극적 배려보다는 소극적 배려에 가깝다. 결국 느끼고 깨닫고 의식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깝다.

진심은 어느 시대와 어느 사회에서나 통한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법은 없다. 진심으로 다가갈 때 닫혔던 마음 문은 스르르 열리게 된다. 적극적 배려로 자신만의 진솔한 정체성을 갖추고 브랜딩에 몰두하면 얼마든지 창직으로 평생직업을 찾아낼 수 있다. 적극적 배려는 긍정적인 태도와 연결된다. 당장 눈 앞에 금전적인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사람을 얻으면 나머지는 뒤따라오게 마련이다.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에게는 뭔가 될 일도 사람을 잘 못 만나면 그르치게 된다. 세상만사 모두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벌어진다. 그러니 소극적 배려를 떠나 적극적 배려로 밝은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출처: 오늘경제 http://startup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