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직칼럼] 제로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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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zero-sum이란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하여 한 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 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를 말한다. 제로섬 사회란 경제 성장이 멈추어 이용 가능한 자원이나 사회적 부의 총량이 일정해져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반드시 다른 이해와 충돌되는 일이 일어나는 사회를 가리킨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 아니 그 이전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부터 이미 제로섬 사회로 꾸준히 진입했고 지금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이와같은 현상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과거 수십 년 간의 고도 성장 시대의 환상을 잊지 못하고 애써 눈앞에 닥친 제로섬 사회를 부정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고도 성장 시대에는 개인이나 조직의 탐욕이 아이러니하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해 동기 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냥 두루뭉술 넘어갈 수 있었지만 제로섬 사회가 고착화 된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의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또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하는 승자와 패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며 갈등 비용이 극대화되고 있다. 무슨 사안을 두고도 내가 이기지 못하면 질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혀 도무지 상생을 위한 타협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비단 개인 뿐 아니라 정부조차도 이런 고도 성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많은 국민들은 착시 효과에 빠져 지금까지 그런 대통령을 여러번 선출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제로섬 사회는 양극화를 더욱 부추겨 빈익빈 부익부 사회를 만들어 놓았고 정치권에서는 남탓이나 하게 되는 해프닝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집단 지성의 최고봉인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만을 너무 믿고 개인의 탐욕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점점 제로섬 사회의 덫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번 제로섬 사회에 빠져 들면 쉽게 돌이키기 어렵지만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이타심을 앞세워 제로섬 사회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탐욕은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가르쳐서 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려서부터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성을 강조하고 길러주면 불가능하지 않다.

제로섬 사회를 해결하는 확실한 대안은 창직으로 평생직업을 만드는 것이다. 창직은 다른 사람이나 기업과의 경쟁이 없는 확실한 블루오션이다. 프랜차이즈 사업 등 창업은 정해진 시장의 파이를 일부 빼앗아 오는 것이다. 하지만 창직은 시장을 새로 만드는 것이다. 필자가 창직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십년 전 제로섬 사회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다. 창직을 위한 일대일이나 그룹 코칭에서 빠뜨리지 않는 프로세스는 창직선언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인데 창직선언서는 이타심으로 똘똘 뭉쳐야 가능하다. 돈보다 보람과 가치를 앞세워 누군가를 진정으로 섬기려 할 때 창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제로섬이란 엄청난 패러다임은 결코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았고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창직으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